권격도 발생과 유래 < 우리나라의 사적

    백두산을 중심으로 생활하던 우리의 선조는 환경이 좋은 곳을 찾아 남쪽으로 내려와 농경생활을 해가며 정착한 뒤부터 전투능력의 양성을 목표로 달리기, 던지기, 격투, 수영 등 자발적으로 무에를 닦았고 이것이 파생되어 오늘날의 스포츠가 된 것이 많이 있다.

삼국시대 삼국이 서로 대치하여 세력다툼을 벌인 교전시대로서 공방의 정세는 민족통일의 기운(氣運)을 조성했고, 한편으로는 무예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이 시대에는 신체의 단련만이 전투력을 증강하는 셈이 되어 고도의 무예기술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 것이고 고구려 고분벽화(古墳壁畵)에 그려진 풍속도와 무용총에 그려진 고구려인들의 생활표현에 두 사람이 서로 공격하려는 순간을 그려 놓은 것이 최고의 실증이며 신라 화랑도 기본정신의 5계로 보아 무예를 수련하여 학문을 닦았을 것이며 그로 인해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되었다.
통일신라시대에 전력이란 것을 열고 임금 스스로 임석하였다하니 심신단련을 위한 훈련에 그친 것이 아니라 권격도와 같은 경기로서 행하여졌음을 알 수 있다.

우리사적의 삼국사기, 고려사, 무예도보통지 등에는 수박, 축국, 추천, 수벽타, 수박희, 수백, 권법, 권술, 격봉, 격양, 격검, 격구등으로 기록한 가운데 고려사의 수박희는 무술로서 뿐만 아니라 스포츠경기로서도 제 삼자가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을 정도로 체계가 서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 실록에서 수박희는 얼마나 많은 일반대중에게 보급되었는가를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정조 14년(1790년경) 왕명에 의해 이덕무가 만든 무예도보통지에는 권법이 무예의 정식 한 종목으로 포함되어 수록하였다는 것은 그만큼 권법에 대한 무예로서의 비중이 컸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 말엽부터 문인 숭상과 사색 당파싸움으로 무인의 학대와 탄압으로 산중에 은둔생활 속에 도피생활을 하였으며 일본의 침략으로 한일합방이 된 일제 강점기에는 우리문화의 핍박으로 연맥을 완전 단절시킨 상태에서 해방 후 곧 6.25전쟁 발발과 50년대 말까지 어수선한 사회혼란 등으로 장기간동안 우리문화와 함께 고유의 무예도 전통승계가 없다시피 되었으며 그 행적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해방 후 일본 중국 등으로부터 입국한 몇몇 분들에 의해 당수, 공수등 으로부터 도장문화의 시작과 함께 심신수련과 호신 무술이 활성화되기 시작하였고 62년도 태수도가 발족하여 64년 태권도로 개칭되었으며 합기도 등이 선보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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